[광주=이홍래기자]총사업비 1,600억 원이 투입되는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가 개최를 불과 5개월 앞두고 주행사장 안전성 논란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상습 침수 구역인 진모지구를 주행사장으로 고집하는 데 대해 정치권과 전문가들이 일제히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흙탕물에 잠긴 도로와 마비된 교통망이 예견된 상황에서, 무리한 행정 절차가 자칫 '국가적 망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15년째 겉도는 매립지, '뻘밭' 위의 국제행사 우려
지난 2019년 태풍 '다나스'가 한반도를 강타했을 당시, 여수 진모지구는 거대한 저수지로 변했다. 도로 경계는 사라졌고 차량들은 반쯤 물에 잠긴 채 방치됐다. 여수시청이 2009년 준공한 이 매립지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배수 문제와 교통난으로 인해 당초 목적했던 주거지 조성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습적인 침수 현상은 단순히 강수량의 문제가 아니라 지형적 결함과 미비한 배수 설계에서 기인한 구조적 한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취약한 토양 위에 대규모 국제 행사를 치르겠다는 발상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격이다. 지금이라도 기상 이변에 대비한 철저한 지질 조사와 배수 체계 전면 개편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박람회 기간 중 집중호우가 발생할 경우 관람객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기존 인프라 두고 왜 사서 고생?"... 정치권·시민사회 성토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더불어민주당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후보인 민형배 의원은 "이미 훌륭한 인프라를 갖춘 여수세계박람회장을 두고 굳이 침수 위험이 큰 간척지에 임시 시설을 짓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행사장의 전면적인 위치 변경을 주장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강제윤 소장 역시 KTX 여수엑스포역에서 도보 3분 거리인 기존 전시관 대신, 차량으로 30분 이상 소요되는 1차선 도로 끝의 진모지구를 택한 것은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우수한 접근성과 검증된 안전성을 갖춘 기존 시설을 외면한 채, 대규모 혈세를 들여 '임시방편'식 행사장을 조성하는 것은 자원 낭비의 전형이다. 국제 사회에 '섬'의 가치를 알리겠다는 본래 취지가 퇴색되지 않으려면, 접근 편의성과 관람객의 안전이 최우선 고려되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지금이라도 전문가들의 제언을 수용해 주행사장 이전 가능성을 열어두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정부 차원 긴급 점검 착수... 5개월의 시간 싸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중앙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우려 표명 이후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오늘(21일) 여수 현장을 직접 방문해 배수 시설과 안전 대책을 점검한다. 김민석 국무총리에 이은 릴레이 방문은 이번 사안을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닌 국가적 안전 과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정부의 잇따른 현장 점검은 박람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다. 단발성 시정 조치에 그칠 것이 아니라, 기후 변화에 따른 극한 호우 상황까지 가정한 고강도 안전 가이드라인을 수립해야 한다. 1600억 원이라는 국민의 혈세가 흙탕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도록, 남은 5개월 동안 행정력을 총동원해 안전과 효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할 것이다.
팩트체크
여수 진모지구와 섬박람회 논란
- 진모지구 침수 이력이 실제로 심각한가?
- 사실. 2019년 태풍 다나스 당시 무릎 높이까지 차오른 침수 사진과 영상이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여수시의회에서도 배수 불량 문제를 수차례 지적한 바 있다. - 기존 박람회장(엑스포장) 사용은 불가능한가?
- 절반의 사실. 현재 여수세계박람회장 부지는 '여수광양항만공사'가 관리 주체로 변경되어 사용 협의가 필요하지만, 물리적·기술적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는 아니다. - 예산 1,600억 원의 용처는 적절한가?
- 논란 중. 주행사장 조성 및 철거 비용 등 휘발성 예산 비중이 높다는 지적이 있어, 국회와 지방의회에서 예산 효율성에 대한 검증 작업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