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이홍래기자]
더불어민주당 정준호 의원, 대학원 설치와 연계한 이전 법률안 대표 발의
학생·교수 사회 "현장성 결여된 탁상행정" 비판하며 사수 의지 표명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의 소재지를 전남광주통합특별시로 명시한 법안이 발의되면서 대한민국 문화예술 교육계가 요동치고 있다. 정준호 의원이 주도한 이번 개정안은 대학원 설치라는 숙원 과제를 미끼로 학교의 물리적 이전을 강제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예술 현장과의 긴밀한 네트워크가 생명인 전문 예술 교육의 특수성을 도외시한 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학교의 운명을 결정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23년 만에 재점화된 '문화 수도' 이전론, 그 시작은?
한예종 이전 논의는 결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 뿌리는 2009년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북구 석관동 캠퍼스가 경종의 능인 '의릉' 터를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은 왕릉 복원을 위해 부지를 비워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이로 인해 한예종은 원치 않는 '떠돌이' 신세가 되었고, 송파구, 과천시, 고양시 등 여러 지자체가 유치전을 벌이며 후보지로 거론되어 왔다.
하지만 이번 광주 이전 논의는 성격이 다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됐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정치적 명분이 강력하게 개입했기 때문이다. 정준호 의원 등 광주 지역구 의원들은 수도권에 집중된 예술 인프라를 분산하고 광주를 명실상부한 예향의 도시로 완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부지 확보 문제를 넘어 국가 예술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예술은 현장에서 피어난다"… 학습권 보장 외치는 목소리
정치권의 화려한 수사 뒤에는 교육 당사자들의 절규가 자리한다. 한예종 총학생회와 교수 사회는 광주 이전이 "예술 교육의 사형 선고"라며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예술 교육은 강의실 내 지식 전달을 넘어, 서울의 공연장, 갤러리, 현업 예술가들과의 실시간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최고의 강사진과 현장 네트워크를 포기하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은 결국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K-컬처의 젖줄을 스스로 끊는 행위나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번 법안이 오랜 염원이었던 '석·박사 학위 과정(대학원) 설치'를 이전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점이 구성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교육적 필요에 의해 추진되어야 할 학제 개편이 정치적 거래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성공한 모델을 인위적으로 옮긴다고 해서 지역의 예술 생태계가 곧바로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물리적 이동은 우수한 인재들의 이탈을 가속화하고, 국가적 예술 자산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상생의 길인가, 공멸의 길인가… 정치와 예술의 해법 찾기
현재 한예종 내부와 문화예술계는 이번 사안을 단순한 지역 이기주의가 아닌 '예술의 본질'에 대한 투쟁으로 보고 있다. 민형배 의원을 비롯한 법안 찬성 측은 지역의 문화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라며 밀어붙이고 있지만, 현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엔 역부족이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가치가 예술 교육의 특수성과 충돌할 때, 어느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은 반드시 극심한 사회적 비용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교를 어디로 옮기느냐는 소모적인 논쟁이 아니다. 학생들이 더 넓은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도록 교육 환경을 고도화하고, 각 지역이 자생적인 예술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치적 성과를 위해 교육의 주체인 학생과 교수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정책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진정한 문화 강국은 행정적 명령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존중하는 토대 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 팩트체크 ]
- 이전 논의의 시작: 2009년 의릉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왕릉 복원 계획에 따라 석관동 캠퍼스 이전이 불가피해진 것은 사실이다.
- 광주 이전 법안의 핵심: 정준호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한예종의 광주 이전'과 '석·박사 학위 과정 설치'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고 있다.
- 학교의 입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측은 대학원 설치는 찬성하지만, 교육 경쟁력 약화를 우려해 광주 이전에는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