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이홍래] 전남 동·서부권에서 시민들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결정하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의 정치 실험이 본격화됐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후보와 연계한 지역별 시민사회 플랫폼이 잇따라 출범하면서, 기존 관료 중심의 행정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민 후보가 제시한 '시민 제안 100일 내 정책화' 약속이 거대 통합특별시의 행정 속도와 시민들의 숙의 수준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학계와 정계의 이목이 쏠린다.
동·서부권 아우르는 '시민참여 플랫폼'의 탄생
목포·무안 중심의 '통합시대 서부권 민생포럼(이하 서민포럼)'과 여수 중심의 '통합시대 여수포럼(이하 여수포럼)'이 각각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이들 포럼은 주청사 위치 선정, 군 공항 이전, 여수국가산단 대전환 등 지역의 오래된 난제들을 타운홀미팅 형식으로 공론화했다.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포럼은 단순한 의견 수렴 기구를 넘어 시민이 직접 의제를 설정하고 실행 방안을 도출하는 '시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창구로 기능할 예정이다.
이러한 흐름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단순한 민원 제기를 넘어 지역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소통 문화는 자치분권 시대의 필수적인 자양분이다. 따라서 이러한 시도가 일회성 정치 이벤트에 그치지 않으려면, 시민의 아이디어를 행정 체계 내로 안전하게 안착시킬 수 있는 공식 제도의 정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포퓰리즘과 지역 이기주의 극복할 '숙의 시스템' 과제
시민 중심의 의사결정이 장점만 가지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다수의 이해관계가 얽힌 중대 현안의 경우, 개별 집단의 이기주의(NIMBY)나 가짜 뉴스에 기반한 포퓰리즘으로 흘러갈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전남연구원 등 정책 연구기관들의 분석에 따르면, 날것 그대로의 시민 의견을 여과 없이 행정에 대입할 경우 오히려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거나 의사결정이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인 '데시딤(Decidim)' 모델처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숙의 시스템 도입이 요구된다. 무작위 표본추출을 통해 대표성을 확보한 시민 배심원단을 구성하고, 상반된 정보에 대한 충분한 학습과 토론 과정을 거치게 함으로써 이기적 독단을 공동체적 합의로 승화시켜야 한다. 통합특별시의 성공을 위해서는 감성적 참여를 이성적 숙의로 전환하는 정교한 여과 장치 설계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100일 단기 정책화와 거대 행정의 속도 조화
민 후보의 '100일 내 정책 답안 제시' 공약은 행정의 효능감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광주와 전남을 아우르는 메가시티(Megacity) 출범의 물리적 속도를 고려할 때, 숙의 과정이 행정의 발목을 잡는 '병목 현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행정의 효율성과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효율적 결합을 위해서는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 플랫폼을 구축하여 의제 제안부터 AI 기반 데이터 분류, 전문가 타당성 검토까지의 과정을 모듈화할 필요가 있다. 행정안전부의 디지털 정부 혁신 가이드라인을 벤치마킹하여, 시민 제안이 접수된 순간부터 실시간으로 진행 상황을 추적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행정 지연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버넌스 패러다임의 대전환
과거 행정이 정책을 독점하고 시민은 사후에 의견을 제출하던 '톱다운(Top-down)'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시민이 제안하고 공무원이 이를 뒷받침하는 '보텀업(Bottom-up)' 구조는 거를 수 없는 시대적 조류다. 전남 동·서부권에서 시작된 이번 주권 플랫폼 실험이 성공적인 선례로 남기 위해서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이를 뒷받침할 디지털 시스템의 고도화가 동시에 맞물려 돌아가야 할 것이다.
팩트체크 (Fact Check)
시민참여 플랫폼을 통한 행정 효율화 사례가 존재하는가?
체크 결과: 사실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데시딤(Decidim)' 플랫폼은 시민 10만 명 이상이 참여해 도시 계획의 70% 이상을 실제 정책에 반영했으며, 의사결정 비용을 크게 절감한 선례가 있다. 국내에서도 서울시의 '민주주의 서울' 플랫폼 등이 정책 반영의 통로로 활용된 바 있다.
시민 제안을 100일 내에 정책화하는 것이 행정적으로 가능한가?
체크 결과: 조건부 가능하다. 일반적인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제정 및 예산 편성 주기를 고려할 때, 100일은 단기 타당성 검토 및 방향성 제시(로드맵 수립)가 가능한 시간이다. 다만 예산이 수반되는 대형 사업의 경우 중앙정부의 투자심사나 의회 승인 등 법적 절차가 필요하므로, '100일 내 실행'보다는 '100일 내 가부 결정 및 대안 제시'로 해석하는 것이 행정학적으로 타당하다.
핵심 인사이트 Q&A
시민주권정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역 이기주의(NIMBY)' 문제를 방지할 구체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시민들의 개별적 민원이 날것 그대로 정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민숙의위원회' 같은 여과 장치가 필수적이다. 인구통계학적 비율에 맞춰 무작위로 추출된 시민들이 전문가들의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받은 후 끝장 토론을 거쳐 합의안을 도출하는 '공론조사' 방식을 도입하면, 이기적 의제를 공익적 의제로 정제할 수 있다.
Q2. 거대 통합특별시 출범 과정에서 시민 참여 프로세스가 행정 속도를 늦추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신속 분류 시스템'이 답이다. 블록체인 기반의 모바일 투표 및 AI 의제 분석 기술을 도입하여 중복되거나 실현 불가능한 제안을 1차로 스크리닝하고, 유의미한 의제는 즉각 담당 부서와 매칭하는 하이브리드 거버넌스 모델을 구축해야 행정 지연을 막을 수 있다.
Q3. 전남 동부권(여수)과 서부권(목포·무안)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시민 플랫폼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동·서부 포럼 간의 '교차 교류 및 공동 숙의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양 지역의 시민 대표단이 상대 지역의 현안을 교차 검토하는 '상생 숙의 과정'을 제도화함으로써, 지역 갈등을 제로섬 게임이 아닌 윈-윈(Win-Win) 구도로 전환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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